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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학과 무욕의 상상력

  • H.Press
출판
4.08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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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바슐라르의 텍스트는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의 파트너다. 따라서 바슐라르를 읽게 되면, 누구라도 스스로가 바슐라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슐라르는 이렇게 그의 독자에게 꿈을 꾸게 하는 아주 특별한 매력을 지닌 철학자이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그와 하나가 된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독자는 금방 바슐라르로 빙의되어 그와 공저자(co-auteur)가 된 느낌을 갖게 된다. 바슐라르는 독자에게로 다가와 독자를 변화시키는 마력을 지닌 철학자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집필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전체를 개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바슐라르를 읽는다는 것, 그리고 바슐라르와 함께 상상하고 꿈꾼다는 것의 의미를 ‘수필 형식’으로 소개해보았다. 2장은 현대문명, 특히 기술과 자본이 이끌어가는 작금의 시대를 바슐라르가 생존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바라보았을지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3장에서는 바슐라르가 중시하는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4장에서는 바슐라르가 의도하는 상상력의 본질이 무한(無限)-무욕(無欲)-무위(無爲)에 있다는 점을 밝혀보았다. 5장에서는 바슐라르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지?’를 다루었으며 6장과 7장에서는 바슐라르의 시론을 하이데거, 마그리트와 비교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음미해보았다. 8장에서는 특히 대지(大地)에 대한 그의 두 편의 저서를 시학과의 관계를 통해 분석해보았고, 9장에서는 바슐라르의 4원소론 전체를 조망하면서 상상력이 현대인의 삶을 치유하는데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모색하는 다소 ‘도전적인’ 제안을 시도해 보았다.

[책 속으로]
그런데 이러한 익숙함을 현대인의 관계와 함께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달리 말해 현대인은 기술을 통해 삶의 순간을 기기에 보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에도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어떤 철학자들은 우리들 각각이 고유하다는 것을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들 각자는 상이한 관계들을 맺고 있기에 교차점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간다. 현대인에게 많은 관계들은 기술이 제공하는 수단을 통해 연결되고 유지된다. 그런데 이 수단은 현대인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저 관계를 매개하는 기술적 수단이 개입된 것으로만 보아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 유지는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져야 한다. 인간관계의 유지가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메신저를 통해 언제든 소식을 묻고 전할 수 있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의 등장과 다양화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의 감정 상태를 꽤 유사한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관계를 통해 주고받는 모든 것들이 풍요로워졌는지 묻는다면, 이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언제든 얼마든 전달될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질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가족, 친지들과 얼마든지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전달받을 수 있지만, 피상적인 경우가 많고 내밀한 교감을 형성하는 경우는 적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해 현대의 인간성이 급작스럽게 이기적으로 변화했다는 진단을 내려야 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측면은 많은 현대인이 관계 자체를 유지하는데 피로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바로 여기에서 피로를 느낀다. 기묘한 모순을 만난 것 같다. 기술은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했으며, 시간적·공간적 한계에서 자유롭게 했고, 많은 노동력을 경감시켜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의 열매가 여유를 허락하기보다는 피로를 준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 여기서 두 번째 요인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는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를 규정하는 경제체제 전반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에 입각한 효율성의 추구와 이에 따라 각박해진 경쟁의 논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기술의 혁신은 우리의 삶에 편리와 여유를 선물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체제는 이익의 추구를 위해 더 효율적일 선택을 할 것을 늘 강요한다. 여기서 그 이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현대인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현대 기술이 의도한 바는 아니며, 그 책임을 기술에 전가하는 것은 다소 가혹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와 여유마저 장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현대사회를 규제하고 있다는 점은 그런데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살아가야 한다? 정감을 주고받는 이들, 설사 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모두가 성공만을 꿈꾸는 가운데 도태된 이들은 이방인이 되며, 이방인은 곧 사회에서 부차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여유로움의 시간마저 무언가에 쫓기기에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은 물론, 기존의 관계 유지 역시 힘든 일이다. 동시에 휴식의 시간마저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대인에게 관계의 유지는 늘 피로를 동반한다. 현대인은 비록 정감을 주고받는 관계라 하더라도 서로 암묵적인 협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함께함에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개인사에 개입하지 않기, 취향과 의사의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피로감을 자극하지 않기, 서로에게 적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방인으로 남기!

흥미롭게도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 모든 것을 기획한다. 모든 것을 상품화시켜 무엇인가를 소비하면서 피로감을 달래게 한다. 기술은 이를 실시간으로,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현대의 소비자본주의는 인간을 특정한 모양의 공간 안에 가두고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그 공간은 당연히 둥글지 않고 모난 것일 거다. 시간의 지연을 초래하는 곡선 대신 즉각 우
리의 눈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직선, 물건을 용이하게 정돈할 수 있게 구획된 사각, 이는 분명 현대의 기술-자본의 이미지이며, ‘각이 진 네모’가 곧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목차

프롤로그 / 1

제1장 바슐라르 읽기, 바슐라르와 더불어 꿈꾸기 / 21
제2장 기술과 자본 중심의 현대문명과 ‘인간’의 자리 / 49
제3장 일상적 대상과 주체의 상호적 교감으로서 상상력 / 81
제4장 무위-무한-무욕의 사고실험으로서 상상력 / 117
제5장 시(詩): 순간의 형이상학과 우주를 향해 열린 창 / 165
제6장 시적 순간과 현존재의 시학 / 205
제7장 시적 공간과 자연의 호명 / 263
제8장 상상력과 삶, 노동의 의지와 휴식의 이완 / 299
제9장 가스통 바슐라르와 상상력의 치유학 / 337

에필로그 / 375
참고문헌 / 387
찾아보기 / 401

저자 정보

  • 박치완

    • 국적 해당 정보가 없습니다.
    • 출생
    • 학력 프랑스 부르곤뉴대학교에서 베르그송의 방법론 연구로 박사 학위
    • 수상 해당 정보가 없습니다.
  • 김윤재

    • 국적 해당 정보가 없습니다.
    • 출생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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